(번역) 롤플레잉 게임에 필요한 새로운 공식

원문 : A new recipe for the roleplaying game formula

귀도 헨켈(Guido Henkel)은 1983년 부터 전문 게임 개발자로 일했으며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프로듀서 를 맡았다.

거의 모든 퍼블리셔들이 일치 단결하여 롤플레잉 장르 게임(RPG )의 개발을 포기하던 1990년대 중반에만 해도,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의 소멸은 불가피해 보였다. 높은 개발 비용, 긴 개발 기간, 게다가 틈새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가 되어 버리면서 업계 경쟁자였던 1인칭 슈터 만큼 주주들을 만족시킬 이득을 내지 못하게 되자, 이 장르의 게임을 제안하는 것은 하이 리스크 사업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그런 종말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RPG 장르는 적응과 게임플레이의 간소화를 통해 살아 남았다. 진입 장벽을 낮춰 더 많은 유저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주류 게임으로서의 오늘날의 CRPG는 8, 90년대의 선조들과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사실 이 게임들은 RPG 자체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고전적 디자인 패러다임으로 의도적으로 회귀하고 있는 최근의 복고풍 RPG 부활 현상은 고려하지 않았음에 유의해 주길 바란다.)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CRPG들을 피쳐의 깊이가 부족하다거나, 너무 얄팍하다고 평하는 것은 그것을 움직이는 게임 메커닉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본 것이자, CRPG의 현 위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들 게임들은 정반대로 상당한 깊이를 갖추고  있으며 수많은 피쳐로 무장하고 있다. 게임플레이가 지나치게 얕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것을 보여주고 이용하는 방법 때문이다.

한계는 변화했다

게임 업계가 만든 초기 CRPG들은 모두 기술적 제약을 심하게 받았다. 느린 컴퓨터, 부족한 메모리, 비싼 저장장치, 낮은 화면 해상도, 모든 것이 이 장르가 가진 잠재력을 제한하는 요소들이었다. 그 결과 CRPG들은 롤플레잉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 중 특정한 측면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드웨어의 성능은 점점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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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ms of Arkania 1 – Blade of Destiny>

1989년 우리가 <아카니아의 왕국>을 개발을 시작할 당시, 우리 목표는 테이블토크 롤플레잉 경험을 최대한 재현하는 것이었다. 디테일이 너무 과했던 탓에 플레이어들이 그 과정의 깊이에 질리게 만들긴 했지만, 여러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유연성이었다.  그것이 아마 출시 25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다시 플레이 하는 팬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기를. 그런 게임들도 심각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세상에서 기술은 더 이상 제약 요소가 아니게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요즘의 CRPG는 그들의 원조였던 테이블토크 게임에서 더 동떨어진 물건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지금이 CRPG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적합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모든 트리플A CRPG는 매우 단순한 공식으로 함축되어 있다. 이곳저곳을 달리고, 적과 싸우고, 우호 NPC와 대화하고, 꽤 고정적인 퀘스트 라인을 따라간다.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는 현실에서의 경험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데, 게임 내 자동 조종 기능 덕분에 플레이어 자신의 사고력이나 상상력을 쓸 필요가 없고 당연히 대사 한 줄도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클릭을 반복할 뿐. 퀘스트 지점 A에서 B까지 최단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 기능 덕분에 길을 잃는 일은 없으며, 운이 좋다면, 기적과도 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 결정을 실제로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퍼즐은 극히 드물며, 어쩌다 접하게 될 때는 – 보통 던전의 맨 끝이기 마련인데 – 답이 이미 나와 있거나 단순한 배열이거나 아니면 순서 맞추기 종류다. 어쨌든 플레이어의 진행을 막거나 몇 초이상 붙잡아 두는 일은 없다.

진정한 롤플레잉의 가치는 선택

그게 재미 없다는 건 아니지만, 진정한 롤플레잉 게임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것과 지향점이 상당히 다르다. 지금 남은 건 우리고 또 우려낸 뒤 남은 최소한의 엑기스, 장르의 뼈대에 가까운 무언가다. 문제 해결이나 진행 경로에 있어 또 다른 선택이란 것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과 싸우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왜 황무지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체를,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 공격하고 싶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화려한 마무리 기술로 트롤의 배를 갈라 버리는 대신 교섭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 매력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 땐? 적을 죽일 필요 없이 몰래 숨어 들어가 퀘스트 아이템을 훔치는 것을 선호한다면 어떻게 되나? 애초에 이런 방향까지 명시적 해결책으로 의도한 게임이 아니라면, 이런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에의 환상

이런 게임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정해진 장소에서 큰 줄거리의 사건에 거의 변화를 주지 않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가는 것이다. 오늘날 CRPG의 오픈월드 디자인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주지만, 실제로 자유로운 것은 탐험 부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매우 인상적이며 옛날 게임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많은 퀘스트를 순서에 상관 없이 수행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전체적인 월드 내러티브와 관련성이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일 뿐이며, 게임 속 세계는 여전히 결핍 상태다.

가끔 어떤 스토리라인 이벤트나 퀘스트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면, 대개 게임의 다른 요소들과 분리시켜 미리 스크립트로 만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로 국한되며, 게임플레이 전반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의 롤플레잉에 선택의 자유가 얼마나 남아 있을 것인가?

실제로 대부분의 요즘 CRPG는 모험 보다 레벨 노가다에 필요한 경험치를 벌기 위한 반복적이고 따분하기까지 한 퀘스트들로 채워진 일종의 MMO의 싱글플레이 모드 처럼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에서 ‘플레이’ 부분을 죽이지 말자

최초에, 플레이어가 해야 할 귀찮은 일들을 컴퓨터가 대신 해주기 시작한 것은 축복이었다. 모눈 종이에 레벨의 지도를 그리고 설명을 적는 일은 누구나가 즐거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매우 빠르게 오토맵핑 기능과 수락한 퀘스트를 기록해 주는 일지 기능이 CRPG에 추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오늘날 컴퓨터는 퀘스트의 최종 목적지, 모든 제작에 필요한 재료, 대장장이, 산적 캠프, 칼을 가는 곳, 가게들, 거기다 모든 주요 NPC, 모든 던전 입구, 모든 캠핑 장소를 기록하고 지도로 보여주며, 어떤 게임에서는 편리하게 다음 퀘스트 목적지 까지 가는 경로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롤플레잉의 어디에 플레이가 남아 있는가? 우리는 플레이어가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게임들을 만든 것이다. 더 이상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전 롤플레잉 게임들을 그토록 기억에 남게 만든 많은 즐거운 디테일들을 플레이어로 부터 빼앗아 버렸다. <바즈테일2>를 하면서 스네어에서 길을 잃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 사실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는 거기 속한다.

<Bard’s Tale 2>

대화는 충전재?

오랜 시간이 흐르며 많은 기술이 발전했지만, ‘대화’가 여전히 CRPG의 약점 중 하나라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위처3: 와일드 헌트> 처럼 다른 게임들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지만, 사실 모든 대화는 대사나 플롯을 진전시키기 위해 특정한 응답을 선택하게 하는 화면일 뿐이다. 게다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보통 그 역할은 맨 위의 지문이 맡는다.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은 선택이 바뀌면 결과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자 보다 복잡하고 더 예측하기 힘든 접근법을 취하긴 했지만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Dragon Age: Inquisition>

그 결과 대화와 그에 곁들여진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지루한 장애물이자 실제로 다뤄야 할 전체적 월드 내러티브를 대신하는 충전재 같은 느낌을 준다.

전통적 RPG는 그렇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물론 살아 숨쉬는 인간 게임 마스터 덕분이긴 했지만, 게임을 디자인한 의도가 그랬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대한의 자유가 핵심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선택을 하도록 강제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CRPG 게임플레이의 상당 부분이 탐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전통적 RPG는 대부분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근본적 차이가 전반적인 경험의 차이와 그 결과 게임디자인에 대한 접근에 차이를 만들어 냈다. 한쪽은 플레이어를 이끄는 것이고, 다른 한 쪽은 플레이어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가지 않는 현대 CRPG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한 퀘스트 지점에서 다음으로. 목적지를 찾기 위해 아름다운 오픈월드를 탐험할 필요조차 없다. 지도에 분명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게임플레이의 대부분은 A지점에서 걸어(또는 말을 타고) 가서 몬스터나 NPC가 있는 장소인 B지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축약 되며, 거기서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결국 피할 수 없이 다음 퀘스트 지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변화를 위해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활용하자

2000년 대 초 RPG가 간소화되고 지금의 주류 공식으로 자리잡게 된 과정에서, 핵심 목표는 항상 더 접근하기 쉽고 관리하기에도 배우기에도 쉽게 만드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컴퓨터 자동 조종’은 이 과정에서 복잡한 데이터 작업 대부분을 없애는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RPG들은 여전히 많은 수치들을 가지고 있다. 고전 CRPG에서의 캐릭터 능력치, 주사위 규칙, 성장 고려 사항 같은 것들이 아니라 ‘스킬 트리’의 형태다. 스킬트리는 컴퓨터 게임의 클리세가 되어서 요즘에는 거의 모든 게임에서, 심지어 1인칭 슈터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RPG에서는 잘못 쓰이면 실제 게임에서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게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전통적인 테이블토크 롤플레잉은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게임이었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것을 시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플레이어들은 상상력을 발휘했고 게임 캐릭터가 가진 기술들을 이용해 위험한 상황이나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그 결과 기술들이 실제 경험을 통해 검증될 수 있었다. 시행을 통한 학습이다. 많은 CRPG가 캐릭터 성장에서 이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대신 모든 캐릭터에게 클래스나 직업에 관련된 가능한 모든 기술을 쏟아 부은 뒤, 깔끔한 스킬 트리 모양으로 정리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플레이어를 감탄하게 만들고 깊이와 다양성이 있는 RPG라는 느낌을 주는 방식이기는 하다. 하지만 만약 한번에 한개의 스킬 밖에 배우지 못하고, 당신의 5레벨 전사가 한번도 도끼를 휘둘러 본 적이 없다고 하면, 플레이어들에게 도끼와 관련된 스킬 트리라는 불필요한 짐을 지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시점에서 이것들은 군더더기 이상의 무엇도 아니기 때문이다.

열쇠는 독창적인 캐릭터 성장

다른 캐릭터들과 다른 능력과 개성을 갖출 수 있는 캐릭터 성장은 중요하다. 대부분의 게임은 배분 가능한 스킬 포인트를 레벨 성장에 연계시켜 놓았다. 학습을 통한 진짜 캐릭터의 성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충분한 수의 몬스터를 죽였거나 퀘스트를 해결했나? 여기 스킬포인트를 주마. 원하는대로 쓰도록 해라. 이 방식은 기술적 측면에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진짜 롤플레잉 게임의 피쳐라 하기에는 너무 동떨어지고 단순화 되어 있다. 게임이 계속되어 플레이어가 모든 스킬트리의 모든 스킬을 다 찍을 수 있는 스킬포인트를 얻게 되는 시점이 되면, 개성있는 캐릭터라는 환상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보이지 않는 수치가 있고 반복 사용을 통해 그 수치를 올리면 스킬이 성장하는 <엘더 스크롤: 스카이림>의 접근법이 롤플레잉 정서에 더 잘 맞는다. 여전히 어수선하게 별 상관없는 스킬을 묶은 20개의 스킬트리를 상대해야 하긴 하지만, 적어도 실제로 스킬을 쓰는 것을 권장하고 게임플레이를 통해 이를 성장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스카이림은 아마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현재까지 나온 그 어떤 CRPG보다 가장 롤플레잉에 가까운 경험을 만들어 낸 게임일 것이다.)

현대 CRPG의 컨텐츠는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해 졌다. 메인 스토리 플롯, 전설 등급 스토리라인, 서브플롯, 클래스 퀘스트 등이 어우러져 컨텐츠가 넘쳐 흐르는 월드를 구성하고 있다. <스카이림>, <인퀴지션>, <폴아웃4>, <파이널 판타지 15>, <위쳐3> 같은 게임들만 보더라도 컨텐츠의 양은 정말 압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두 같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신뢰성(Believability)의 문제 말이다.

너의 세계를 믿게 해줘

자, 여기 산전 수전 다 겪은 모험가, 또는 노련한 스승, 또는 장인에서 조수까지 누구든, 1레벨 쥐에게 쓰러질 수 있다. 세계를 구한 영웅이 주먹 크기의 해충에게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업계인들은 이런 오래된 클리세 반복을 피하는 법을 알고 있다. 스토리가 경험 많고 자신의 분야에 통달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다면 게임 내의 캐릭터도 그걸 반영하는 것이다. 게임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1레벨로 시작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가 대면할 적은 그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 퀘스트에서도 그렇고 게임 월드에서 그 인물에 대한 인정(recognition)에서도 마찬가지다.

월드 컨텐츠의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또는 아마도 그 때문에 – 주변에 보이는 모든 현대 CRPG들에는 사회적 인식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게임에서 AI를 생각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똑똑한 길찾기나 (적대) 개체의 행동 상태와 전반적인 이동을 생각하지, 사회적 행동을 떠올리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2013년 사이코 엔진이라 불리는 디자인 템플릿을 만들어 냈고, <데스파이어> 롤플레잉 게임을 킥스타터에 올리면서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곁들였다. AI시스템의 블록들을 만들어 게임 캐릭터가 무한한 수의 인자들, 다른 캐릭터들, 그들의 강점과 약점, 실수, 과거, 업적… 기타 등등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는 설명을 담고 있다.

2014년 GDC에서 바이오쇼크 제작자 켄 르빈은 “내러티브 레고”라고 부른 비슷한 개념을 설명했다. 목적은 완전히 동일했다. 게임 내 객체의 정보를 기록하고 제공하여 게임의 내러티브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게 한다. 그해 말 출시된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의 네메시스 시스템도, 그 의도와 목적 면에서 보면 내가 구상한 사이코 엔진의 라이트 버전이었다.

새로운 기술로 더 다양한 게임플레이를

여러가지 이유에서, 이런 비슷한 기술을 쓴 다른 게임들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다. 극도로 풍부한 내러티브를 플레이어의 행동이나 업적과 바로 연동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요즘 게임에서 여러분은 영웅을 플레이 한다. 알려지지 않은 영웅,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알아주지도 않는 영웅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기울인 노력은 대부분 그 주민들에게 아무런 감사도 듣지 못하고 지나간다. 예를 들어 스키이림 호바스커(Jorrvaskr )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게임을 시작한 직후에도, 많은 모험을 겪은 뒤에도, 모든 스토리라인과 DLC를 모두 끝낸 뒤에도, 게임 월드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정적으로 느껴진다. 충분히 많은 수의 NPC들이 주변을 걸어 다니기만 하면 깊이가 생기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길. 게임 안의 사회와 문화에 실체가 없으면, 그런 것들은 게임을 하는데 잡음 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CRPG를 클리어하고, 최종 보스를 물리치고 나서,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차원의 틈을 봉인하고, 사악한 마법사를 처치하고, 용들을 물리치고, 더 나은 곳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해냈다는 느낌은?

나는 보통 그러지 못했다. 나의 업적에 대한 사회적인 인지가 게임 세계에 없기 때문에 불만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인퀴지션>은 이 부분의 해결을 어느 정도 시도했던 게임이다. 인퀴지터(플레이어 캐릭터)는 게임 월드 전반에 걸쳐 인정을 받고 존경 – 또는 불신 – 을 받는다. 하지만 개별 업적에 기초한 진짜 사회적 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업적이 캐릭터와 메인 스토리라인과 연동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플레이어는 “언제나” 인퀴지터의 역할을 맡는다.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그는 결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사회적 인지는 플레이어의 행동을 인식하고 그 주변의 세상이 모두 그에 반응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의 경험에 대해 궁금해 하고, 다른 이들에게 주점에서 그 이야길 해 줄 것이다. 게임 내에 캐릭터에 대한 명성이 미리 정해져 있는 산발적 대사가 아니라, 실제 그의 업적을 통해 만들어 지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The Elder Scrolls V: Skyrim>

모든 게임 메커닉 중에서 이런 종류의 사회적 인지와 그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아마도 CRPG를 다음 세대로 나아가게 해 줄 지표가 될 것이다. 네메시스 시스템이 만들어 낸 환호는, 실제 그 시스템의 얕음과 무관하게, 플레이어들이 그런 종류의 게임 내 피드백을 원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면 플레이어에게, 움직이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죽일 필요 없이, 완전히 새로운 보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게임의 롤플레잉 측면을 원래에 가깝게 세밀한 모습으로 되돌려 주고 컴퓨터 게임이 오프라인 롤플레잉 플레이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진짜 세상을 원한다!

발더스 게이트가 RPG 장르를 망각의 심연에서 주류로 인도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에버퀘스트가 장르에 진정한 오픈월드 디자인을 도입해 인기를 모은 지도 거의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CRPG는 거의 진화하지 못했다. 비주얼은 더 환상적으로 변하고, 스토리라인은 더 복잡해졌고, 세계는 더 거대해져서 풍부한 식생과 생물로 탐험을 손짓하고 있지만 언제나 빠져 있던 것은 살아 숨쉬는 심장이었다.

최근의 CRPG를 해보면 이 장르가 정체되었을 뿐 아니라 극도로 공식화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이 장르의 다음 단계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간이라고 절실하게 느낀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술과 강력한 연산력을 단순히 환상적인 비주얼을 만드는데만으로 한정 짓지 말자. 컴퓨터를 우리의 플레이에 함께 하면서 내러티브를 짜내는,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의 행동과 노력을 기억하는,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각자의 고유한 강점과 약점, 업적과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도전 과제를 제공하는, 진짜 던전 마스터로 만들자. 플레이어들에게 결과가 따르는 결정을 강제하는 법을 아는 존재 말이다.

이것들은 내가 CRPG 개발에 인연을 맺어온 수 년 동안 축적한 아이디어나 디자인 패러다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신호라 해도 새로운 롤플레잉 게임에 적용될 수만 있다면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단초가 되어줄 것이다. 도전해 보겠는가? 얼마든지 도울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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